백년전쟁 원인 결과 핵심 요약
백년전쟁 원인 결과 핵심 요약
세계사에는 수없이 많은 국가 간의 전쟁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전쟁, 백년전쟁 원인과 결과등 자세한 내용과 함께 핵심만 요약한 내용까지 쉽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백년전쟁이란?
백년전쟁이라는 이름은 실제 전쟁이 약 116년 동안 지속되었고, 역사학자들은 이 전쟁을 '백 년'이라는 상징적인 이름으로 명명하여, 영국과 프랑스 간의 긴 대립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1. 백년전쟁 원인
백년전쟁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약 116년간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입니다. 이 전쟁의 주요 원인은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와 영국과 프랑스 간의 영토 분쟁에 있었습니다.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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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프랑스 영토 분쟁
당시 프랑스 왕 샤를 4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의 어머니가 샤를 4세의 여동생이었기 때문에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귀족들은 살리카 법을 근거로 여성 후손의 왕위 계승을 거부하고, 발루아 가문의 필리프 6세를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살리카 법이란?
살리카 법(Salic Law)은 고대 프랑크 왕국에서 제정된 법률로, 특히 여성의 상속권을 제한하는 조항으로 유명합니다. 이 법에 따르면, 여성은 왕위를 계승할 수 없으며, 왕위는 오직 남성 후손에게만 이어져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법은 중세 유럽에서 왕위 계승 문제에 영향을 미쳤으며, 백년전쟁 당시에도 프랑스 귀족들이 에드워드 3세의 계승권을 거부하는 근거로 사용되었습니다.
현재 프랑스에서 살리카 법은 공식적으로 폐기된 적은 없습니다. 이는 프랑스가 군주제를 유지했을 때 적용되던 왕위 계승 법이었지만, 프랑스혁명(1789년) 이후 왕정이 폐지되면서 실질적으로 더 이상 적용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프랑스가 공화국으로 전환된 이후로는 왕위 계승 제도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살리카 법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2. 영토와 경제적 이해관계
영국은 프랑스 영토 중 하나인 아키텐 공국을 소유하고 있었고, 프랑스는 이를 회복하려 했습니다. 또한 영국은 상업적 이익을 위해 플랑드르 지역을 지원했는데, 이 지역은 영국의 주요 무역 파트너였고 프랑스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영국과 프랑스 간의 경제적, 정치적 갈등이 격화되면서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3. 전쟁 초기, 영국의 승리
전쟁 초반, 영국은 여러 전투에서 우세를 보였습니다. 1346년 크레시 전투와 1356년 푸아티에 전투에서 영국은 프랑스를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고, 프랑스는 이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특히 잉글랜드의 장궁병이 활약한 전투들은 프랑스의 기사들을 압도했습니다.

4. 프랑스의 반격, 잔다르크의 등장
그러나 15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프랑스는 잔다르크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잔다르크는 프랑스 민심을 되살리며 오를레앙 전투에서 중요한 승리를 이끌었고, 이후 샤를 7세가 프랑스 왕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의 활약은 프랑스에게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5. 전쟁의 종결과 영향 결과
1453년, 보르도 전투에서 프랑스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백년전쟁은 종식되었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로 영국은 거의 모든 프랑스 영토를 상실하였고,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국가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백년전쟁은 양국 모두에서 봉건 제도의 쇠퇴와 국민 국가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백년전쟁 핵심 요약
프랑스 왕 샤를 4세 후사 없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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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3세 프랑스 왕위 계승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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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귀족 필리프 6세 왕으로 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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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프랑스 간 영토 분쟁 및 경제적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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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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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시 전투, 푸아티에 전투 등에서 영국 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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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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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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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레앙 전투에서 프랑스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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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7세 왕위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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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전투에서 프랑스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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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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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앙집권화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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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프랑스 영토 상실
백년전쟁(1337-1453)은 영국과 프랑스 간의 왕위 계승 문제와 영토 분쟁에서 비롯된 전쟁입니다. 프랑스 왕 샤를 4세의 후사 없이 사망한 후,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왕위 계승을 주장했지만, 프랑스는 필리프 6세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초기에는 영국이 크레시와 푸아티에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잔다르크의 등장으로 프랑스가 반격해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1453년 보르도 전투에서 프랑스가 승리하며 전쟁이 끝났고, 프랑스는 중앙집권화를 이룩했으며 영국은 대부분의 영토를 잃었습니다.

결론
백년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나 왕위 계승 문제를 넘어, 유럽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전쟁이었습니다. 1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이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 모두에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영국은 프랑스 내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고 대륙에서의 영향력을 잃었지만, 이후 국내 정치와 경제의 재편으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잔다르크의 활약과 함께 중앙집권적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습니다. 또한, 봉건제의 쇠퇴와 함께 국민 국가의 개념이 형성되었고, 전쟁 중 군사적 혁신도 이루어졌습니다. 백년전쟁은 단순히 두 나라 간의 대립이 아니라, 유럽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상으로 백년전쟁 원인 결과 핵심 요약이었습니다.